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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여덕

宋汝德

187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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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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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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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7년 당시 53세인 것으로 보아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천마산대(天摩山隊)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천마산대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豐)·김세진(金世鎭) 등 40여 명의 청년들이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천마산을 근거지로 조직한 단체이다. 사령장은 최시흥, 부관 최지풍(崔志豊), 참모 박응백(朴應伯), 박영찬(朴泳燦) 등 한말 의병들로 구성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500여 명으로 인원이 늘면서 무장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주로 일제 경찰에게 빼앗은 총기를 가지고 일본 주재소, 경찰서,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거나 일경과 친일파 처단, 그리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일경의 집요한 감시와 추격으로 만주로 건너가 각 독립단체들의 연합투쟁을 목표로 광복군총영에 편입하였다. 광복군 사령부에서는 천마별영(天摩別營)이라고 칭하였다. 1923년 9월 천마산대 대원 20여 명과 함께 평북 희천군 북면 명문동주재소에 불을 질렀고, 창참주재소를 습격하여 일제 경찰을 처단하였다. 이 일로 희천경찰서에 붙잡혀 참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방화죄, 살인죄로 징역을 받았는데, 이에 불복하고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징역 5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고 1927년 11월 15일 신의주형무소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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