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송세호

宋世浩

1900 ~ 1921. 3.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세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자성(慈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자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독립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1년 당시 22세였던 것으로 보아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독립당(獨立黨)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1920년 8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하고, 일본 내각은 1920년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어서 일본 육군은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의 북간도 지역 ‘토벌’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제1기 토벌 때,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였다.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전투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주 지역에서 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다가, 평북 강계군(江界郡)의 김호봉(金浩鳳), 평북 초산군(楚山郡)의 김용문(金龍文)과 함께 붙잡혔다. 함남 장진경찰서에서 조사를 당하던 중, 1921년 3월 5일 오전 6시경 유치장을 검사하기 위해 들어온 3명의 순사에게서 칼을 빼앗고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직 중이던 순사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