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京植
京植1895. 5. 25 ~ 1945. 4.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암살단
- · 철혈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장진홍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95년 5월 25일 서울 종로(鍾路) 봉익동(鳳翼洞)에서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의 하급관리인 이규락(李圭洛)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이명은 이동한(李東漢)·이경대(李京大)·이춘당(李春塘)이다. 서울 종로 계동(桂洞)의 사립 보흥학교(普興學校)에 입학하여 다니고 1910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 방한을 계기로 조선총독부 고관 암살 계획을 세운 김상옥(金相玉)·한훈(韓焄) 등의 암살단(暗殺團)에 관여했다가 만주로 건너갔다. 1921년 중국 펑톈옌(奉天)의 소서변문(小西邊門) 밖에 거주하면서 베이징(北京)의 철혈단(鐵血團)과 연락하며 무기류의 국내로의 밀송을 도왔다. 1925년 5월 서울로 돌아왔다가 ‘의열단의 임무를 띠고 왔다’는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붙잡혔다. 며칠 만에 무혐의로 풀려난 후 중국 톈진(天津)에서 발간되는 『익세보(益世報)』의 서울지사 기자로 재직하였다. 1927년 초겨울에 이정기(李定基)·조재만(曺在萬) 및 이원기(李源祺)·이원록(李源祿, 이명 李陸史)·이원유(李源裕) 3형제와 함께 경북경찰부에 체포되었다. 경찰이 이들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1927. 10. 18)의 '범인' 또는 공모자로 지목한 때문이었다. 1928년 1월 6일 이른바 「폭발물취체벌칙」,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치안유지법」 위반 및 「살인미수」, 「협박」의 공범 혐의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대구폭탄사건은 장진홍(張鎭弘)이 혼자 계획, 준비, 실행한 단독거사였음이 뒤늦게 밝혀진 후인 1929년 5월 6일 보석(保釋)으로 출감하였고, 같은 해 12월 9일의 예심종결 때 면소(免訴)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1936년 2월 이각종(李覺鍾) 등이 주도한 사상전향자 단체 백악회(白岳會)의 발기인 중 1명으로 참여하였고, 같은 해 7월에는 친일 사상단체 대동민우회(大東民友會)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하여 흠결을 보인다. 독립운동가였던 딸 이병희(李丙禧)의 구술회고에 의하면, 1940년경 베이징으로 갔다가 내몽고(內蒙古) 지역에서 광산업에 관계하며 은밀히 항일활동을 벌이다 붙잡혔다고 한다. 일제 괴뢰국인 몽강연합자치정부(蒙彊聯合自治政府)의 수도이던 장자커우(張家口)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사경에 이르러 풀려난 직후인 1945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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