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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수

尹鶴洙

1909. 5. 14 ~ 195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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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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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坡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파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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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우가키 총독 폭살미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5월 14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천현면(泉峴面) 직천리(直川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윤낙삼(尹樂三), 이명은 윤석준(尹錫畯)이다. 1935년 12월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폭살거사계획에 참여하였다. 서울로 이주하여 마포(麻浦)의 대도정(大島町, 현 용산구 용문동)에서 살았고, 고양군(高陽郡) 용강면(龍江面) 신공덕리(新孔德里, 현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서 이운섭(李雲燮)이 경영하는 경성용일주양조장(京城龍一酒釀造場)의 배달원으로 일하였다. 1935년 12월 초순, 배달원 감독 조안득(曺安得)으로부터 6대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폭살 계획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고 승락하였다. 조안득은 1935년 9월경부터 조선총독 암살 거사를 벌이기로 결심한 인물로, 10월 중곡동(中谷洞) 중석광산(重石鑛山)의 화약취급 주임 인진명(印振明)에게서 물고기를 잡는 데 쓴다는 핑계로 다이너마이트와 도화선을 얻었다. 그리고는 모래를 다져넣은 공병에 다이너마이트를 솜으로 싸서 넣고 도화선을 연결하여 폭탄 1개를 만들었다. 이후 11월 18일 아침 일본 도쿄(東京)로부터 귀임하는 우가키를 서울역에서 기다리다 폭탄을 던져 암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하고 경계가 엄중한데다 총독이 역 구내에서 바로 자동차를 타고 곁길로 달아나듯 떠나버려서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10월 하순부터 12월 상순까지 조안득이 강력한 성능의 폭탄 3개를 더 제작하고 총독 폭살 계획에 동참을 제안하여, 동료 배달원 최영진(崔榮鎭)과 함께 의거에 가담하였다. 또 양조장 서부지점 배달원 구승회(具承會)도 옆에서 도와줄 동지로 포섭하였다. 1935년 12월 14일 우가키 총독이 온양온천에 갔다가 2시경 귀경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조안득·최영진과 함께 남대문 세브란스병원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폭탄을 투척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총독이 귀빈실을 통해 다른 길로 가버려서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폭살 기회를 엿보다가 총독이 1936년 1월 1일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참배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 번째로 거사를 계획하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조안득이 이발소에서 무심코 한 말이 흘러나간 탓에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고, 1935년 12월 28일 용산경찰서에 모두 붙잡혔다. 엄혹한 조사를 받고 1936년 1월 23일 경성지법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이른바 살인예비죄, 살인미수죄, 폭발물취체규칙과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었다. 예심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어 1936년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붙잡힌 과정과 수사, 재판 결과는 최종 선고 후 3개월 만인 8월 초순에야 보도관제 해제로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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