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녀
尹仙女1911. 4. 18 ~ 1994. 12.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근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지지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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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1년 4월 18일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회령면(會寧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윤선희(尹善嬉·尹善姬)이다. 근우회 간부로 활동하며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30년 회령의 보흥여학교(普興女學校)를 졸업하고 근우회(槿友會)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월 22일 보흥여학교 학생들의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만세시위를 지도하였다. 이 때문에 일제 경찰에 의해 가택수색을 당하였다. 같은 달 30일 개최된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회에서 서무부원으로 선임되었다. 1930년 2월 2일경 결혼하여 함북 청진(淸津)에서 살고 있던 언니 윤천녀(尹天女, 일명 윤선숙(尹善淑))의 집을 방문하여 청진고등여학교(淸津高等女學校, 이하 청진여고)의 광주학생운동 지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2월 3일부터 언니와 함께 지봉래(池鳳來)의 집에 하숙하던 청진여고 학생 황금진(黃金振)을 수차례 방문하여 궐기를 권유하였다. 또한 그곳에 온 학생 몇 명에게도 그 취지를 설명하여 합의를 보았다. 같은 달 8일~10일 사이 윤천녀의 집에서 항일격문 180여 장과 태극기 170여 개를 만들었다. 항일격문은 “전 조선적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사건은 무엇인가. 약자의 울음소리다. 음식과 의복과 자유를 획득하려는 투쟁이다. 우리들에게 눈과 귀가 있다면 노예교육 철폐하라, 검속된 학생을 석방하라. 백의인(白衣人), 형제여, 약소민족을 해방하라. 동포여 나와라, 용감하게 만세 만세를 부르자”라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2월 10일 황금진의 주선으로 청진여고 학생 김복신(金福信)의 하숙집에서 학생 16명과 회합하였다. 이 자리에서 다음날 11일 오전 9시~9시 30분 사이에 청진 신암동(新岩洞) 시장 부근에 모여 격문과 태극기를 살포하면서 가두시위를 결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당일 밤 일제 경찰에 의해 계획이 발각되었다. 경찰관 20여 명이 청진여고 학생의 숙소를 모조리 수색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압수하였다. 이 일로 2월 11일 언니 윤천녀와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4월 2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30년 5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 월남하였고, 1959년 민주당 서울시당 부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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