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방
兪煥邦1861. 11. 3 ~ 1925. 12.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애국단 청양군단
- · 혈복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청양군 비봉면 만세운동
- · 애국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1년 11월 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대치면(大峙面) 상갑리(上甲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의삼(義三)이고 호는 의곡(義谷)이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4월 아들 유경재(兪暻在)와 함께 청양군 비봉면(飛鳳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들 유경재의 권유로 1919년 11월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에 가입한 뒤, 지부 조직인 청양군단(靑陽郡團)을 설치하고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신현구(申鉉九) 등이 서울에서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이 단체는 만세운동의 대중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결성 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되면서 선전과 통신연락·자금모집 등의 활동을 통해 임시정부의 국내조직인 연통부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 지단은 강원·충청·전라 등지에 설치되었고, 충청남도단(忠淸南道團) 단장은 아들 유경재가 맡았다. 충청남도단 산하에 논산(論山)을 비롯해 청양·예산(禮山)·서산(瑞山) 등지에 지단이 설치되었는데, 이때 청양군단장으로 선임되어 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11월 20일 단장 신현구가 붙잡히면서 지도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본부의 재무감독 문봉의(文鳳儀) 등이 임시정부 특파원 김태원(金泰源)과 결합해 혈복단(血復團)을 새롭게 결성할 때, 청양군단을 포함한 충청남도단은 혈복단의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혈복단은 대한독립애국단 본부와 충청남도단을 흡수·개편한 것이지만, 김교상(金敎爽)·김교선(金敎善) 형제와 임시정부 특파원 신봉균(申鳳均) 등이 가세하면서 임시정부 지원 단체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 나갔다. 이에 따라 혈복단에 소속되어 동지들과 함께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1920년 1월 조직의 발각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년 여 동안 고초를 겪다가,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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