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무용
宋武容1898. 1. 1 ~ 1936. 2.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1월 1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의술(義戌)과 무술(戊述)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린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정미면 천의리(貞美面)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이때 각 리(里) 단위로 연락책을 선정하고, 만세시위를 선도할 선봉 행동대 편성을 맡았다. 그리고 주도자들은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집집마다 1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면장 이인정이 주민들을 집결시킨 실제 목적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만세운동이니 동참하라고 호소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면장의 연설 내용이었지만, 그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 대열을 편성하고, 선두에 세운 태극기를 따라 7km 정도 떨어진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행진하는 도중 만세운동을 목격한 많은 주민들이 합류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의 대규모가 되었다. 이들과 함께 천의장터의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인근 지역의 경찰들을 천의장터로 급파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즈음 도착한 당진경찰서 소속 경찰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만세시위는 격화되었고 남계창 등 주도자들에게 뭇매를 맞고 천의주재소로 도망간 일제 순사들을 쫓아갔다. 일제 경찰들이 다시 총을 쏘며 대항하자, 송재만의 지휘 아래 송봉숙(宋鳳淑) 등 3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을 구타하고, 돌을 던져 시설과 기물을 부수는 등 주재소를 습격하여 문서와 기물, 건물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후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색출하기 위해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공문서 위조행사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920년 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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