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송명진

宋明進

1902. 1. 28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명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부산 좌천동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902년 1월 28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서리(西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부산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학생으로 3월 11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경성학생단(京城學生團)이 부산으로 내려와 서울의 상황과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에 부산에서는 부산상업학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 등이 독립운동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일신여학교에서는 교사인 주경애(朱敬愛)와 박시연(朴時淵)이 부산상업학교 학생과 일신여학교 교사들을 규합하고, 1919년 3월 11일 오후 9시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만세시위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여, 1919년 3월 10일 고등과 학생 10명과 함께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와 태극기 50장을 만들었다. 3월 11일 오후 9시 전날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학교를 나와, 부산 좌천동(佐川洞) 일대를 다니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참여하여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2시간 뒤 출동한 일제 군경에 의해 시위를 같이 주도했던 교사 2명과 학생 전원이 붙잡혀 부산진주재소로 끌려갔다. 이 일로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