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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빈

宋德彬

1898. 3. 10 ~ 195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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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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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報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보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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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보은군 수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3월 10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수한면(水汗面) 묘서리(描西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송항빈(宋恒彬)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2일 보은군 수한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보은군 만세운동은 3월 19일 괴산군(槐山郡) 괴산면(槐山面) 읍내의 괴산장터에서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난 이래, 4월 초순을 중심으로 그 전후 시기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수한면에서는 4월 10일 교암리(敎岩里)에서 만세시위가 시도 되었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실행되지 못하였고, 수한면의 만세시위는 4월 12일 묘서리에서 일어났다. 1919년 3월 19일, 괴산군 괴산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 보은 지역으로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평소 친분을 나누며 교류하던 최용문(崔容門)·안만순(安萬淳)과 만세운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최용문·안만순과 함께 논의하여 4월 12일 마을 인근의 농암산(籠岩山)에서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주민 규합에 나섰다. 1919년 4월 12일, 오후 8시 농암산에 6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횃불을 올려 주변을 밝히고, 모인 주민들에게 주도자들과 함께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운동의 취지를 호소하였다. 이에 산 위에 모인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자 주도자들과 함께 횃불을 치켜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곧바로 주민들이 그 뒤를 받아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횃불만세시위 이후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조사·색출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최용문·안만순과 함께 붙잡혔다.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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