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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능식

宋能植

1898. 5. 27 ~ 196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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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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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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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괴산군 소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898년 5월 27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소수면(沼壽面) 몽촌리(夢村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4월 2일 일어난 소수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괴산군 소수면에서는 1919년 3월 19일 괴산면 읍내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그 다음날인 3월 20일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면소재지인 길선리(吉善里)를 중심으로 100여 명의 주민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4월 2일 몽촌리의 유해륜(柳海崙)과 경권중(慶權重)의 주도로 새로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유해륜은 전국적으로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괴산 지역에서도 이미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향리에서 새로운 만세운동 조직을 결의하였다. 4월 1일 몽촌리의 마을 구장(區長)안 경권중과 논의하여 다음날인 4월 2일 즉시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결정하고, 그 준비에 착수하였다. 유해륜과 경권중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는 호소를 받고, 이에 동의하여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2일 만세시위의 취지에 공감하여 200여 명의 몽촌리 주민들이 시위에 참여하여 시위 대열을 형성하였다. 이때 유해륜과 경권중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대열의 행진을 선도하였다. 시위대는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인 길선리를 향해 행진하였다. 유해륜과 경권중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와 함께 우선 면장의 집으로 가서 시위대의 위세로 압박하여 면장 김승환(金昇煥)도 만세시위에 참여하게 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도록 하고, 그를 앞세워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여 일제 경찰들의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유해륜·경권중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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