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宋琪浩1900. 12. 27 ~ 1928. 4.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수의위친계
- · 살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군 광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12월 27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 비자리(榧子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광주농업학교 학생으로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3월 10일 광주면 읍내 시장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주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9일 광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려고 동료들과 함께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학생들과 교섭하였다. 3월 10일 광주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대를 이끌고 수피아여학교 학생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징역 1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2년 말 소안도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에 가입하였다. 수의위친계는 소안도를 중심으로 완도의 각 섬과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까지 확대된 조직이었다. 1924년에는 4월에 개교한 완도군 신지면 사립신지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1924년 11월 완도군 신지학교 교사로 재직 중 학생들에게 혁명가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임재갑(任在甲) 등 다른 교사 3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완도군청의 퇴직 압력을 받았고, 1925년 3월 2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같은 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26년에는 8월 13일 조직된 사상 단체 살자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살자회의 강령은 첫째로 우리는 상호부조와 정의에 희생할 정신을 갖추며, 둘째로 신사회 건설의 속성을 도모함이었다. 이러한 활동 중 1927년 5월 공안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완도경찰서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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