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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주

宋基柱

1859. 12. 17 ~ 1939.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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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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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英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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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59년 12월 17일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화매동(花梅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기독교 북장로교회 신도로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오포동(烏浦洞, 현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에서 목수로 일하던 중, 3월 18일 영덕면 남석동(南石洞) 시장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덕면의 만세시위는 영덕 일대의 여러 북장로교 교회 조직을 관리하는 조사(助師) 강우근(姜佑根)이 준비하여 일어나게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기독교 신자인 김암우(金岩佑)·강대열(姜大烈) 등과 함께 3월 18일 영덕면의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3월 17일 강대열의 권유를 받고 오포동 교회 집사인 김순근(金順根)과 함께 만세시위 참가에 동의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마찬가지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있던 포산동(葡山洞)의 이승구(李承玖) 등과 합세하여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영덕면 남석동의 시장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에 영해(寧海) 경찰관주재소의 일제 경찰들은 시장을 습격하여 주도자 20여 명을 붙잡았다. 이 과정에서 함께 주재소로 끌려갔고, 시위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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