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주
宋基周1890. 8. 27 ~ 1950. 3.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관련 사건
- · 군산부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890년 8월 27일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서남면(西南面) 옥남리(玉南里)에서 태어났다.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巖里, 현 군산시 구암동)로 이주하여 기독교병원의 사무원으로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6일 군산 시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참여하였다. 군산은 전북에서 최초로 만세시위가 전개된 지역이었다. 군산의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된 1919년 3월 1일 여학교 교사 김병수(金秉洙)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100매를 가지고 오면서 준비되었다. 독립선언서가 도착하자 개정면 교회의 부속 영명학교(永明學校)의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부속 병원의 직원들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일 옥구에 도착한 김병수는 즉시 고석주(高錫柱)·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송정헌(宋正憲)·박연세(朴淵世)·김성은(金聖恩) 등 영명학교 교사들을 만나 군산의 장날인 3월 6일을 만세시위 날짜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더욱 많은 동지의 확보에 노력한 결과, 바로 당일 개정면 교회의 부속 병원 사무원들과 영명학교의 학생들 다수가 참여하였다. 이날 이두열로부터 만세시위의 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양기준(梁基俊)·유한종(劉漢鍾)·김창윤(金昌允)·양성도(楊成道) 등 다른 사무원들과 함께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 필요한 물품의 준비는 양기철(梁基哲)·전세종(田世鍾) 등 영명학교 학생들이 담당하였다. 이들은 학교 등사판을 이용하여 3월 4일까지 독립선언서 약 7,000여 매를 인쇄하였다. 그런데 3월 5일 만세시위 준비가 일제 경찰에 사전 발각되어, 이두열 등 영명학교 교사들이 군산경찰서로 끌려갔다. 이에 끌려가지 않은 양기준 등 다른 병원 직원들과 함께 논의하여 만세시위를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교사들이 끌려간 당일 결행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구암리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때 양기준·유한종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선두에서 만세시위대를 이끌고 군산부(群山府, 현재의 군산 시내)를 향해 행진하였고, 군산경찰서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시내에 나와 있던 군산 주민들까지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곳곳에서 거세게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군산의 경찰을 긴급 출동시키고, 재향군인과 이리(裡里, 현 익산 시내) 주재 헌병대까지 지원 병력으로 파견하여 만세시위를 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만세시위 지도부라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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