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희
宋錦姬미상 ~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황해도 해주군 해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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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당시 기생(妓生)으로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해주면(海州面)에 거주하고 있었다. 1919년 4월 1일 해주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 소식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황해도 해주군에는 기독교인으로 서울의 협성보통학교(協成普通學校) 교사인 김명신(金明信)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이를 통해 해주군의 만세운동은 해주면(海州面)에서 시작되어 이후 석동면(席洞面)·추화면(秋花面) 등으로 확산되었고, 그 해 4월 상순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해주 기생이었던 문응순(文應淳, 기생명:월선)·김성일(金聖日, 기생명:월희)은 고종의 장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였다. 이들은 해주로 돌아와서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3월 하순 옥운경(玉雲瓊)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독립선언서를 구할 수 없자 직접 한글로 독립선언문을 지어 5,000여 장을 인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오후 1시경 해주 읍내의 기독교 병원 부근에서 약 300명이 만세운동을 재기하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이 이를 저지하자 군중은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오후 2시경 문응순 등은 읍내 거리로 나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 주며 만세를 외쳤다. 2,000여 명으로 증가한 군중이 해주읍성 남문 쪽으로 향할 때 기생조합 회원들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남문으로 나가 훈련마당에서 만세를 부르고 동문으로 들어갔다. 해주 읍내 중심가에서 연설을 하고 다시 서문을 향해 행진하다가 해주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과 맞닥뜨렸고, 이때 기생 8명을 포함해 13~14명이 체포될 때 함께 붙잡혔다. 해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19년 12월경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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