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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현

宋國賢

188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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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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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철산(鐵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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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철산군 철산읍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백양면(栢梁面)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9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다가 철산군 읍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철산군 읍내의 만세시위는 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발생하였다. 철산군 만세시위 준비는 3월 1일 선천군(宣川郡)에서 독립선언서를 들고 철산으로 돌아온 명흥학교(明興學校) 교사 안태영(安泰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안태영은 기독교계 사립학교였던 명흥학교의 다른 교직원들과 함께 철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에 뜻을 모으고, 기독교계·천도교계·일반 주민들 중에서 대표자들을 더 규합하였다. 이 계획에 함께 참여하게 된 인물들은 비밀리에 동부동(東部洞)에 있는 유봉영(劉鳳榮)의 집에서 회합을 가지며, 3월 7일 장날을 기하여 동부동 예배당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3월 4일 저녁과 3월 5일에 차련관(車輦館) 인근에서 차련관 교회 목사인 김덕선(金德善) 등의 주도 하에 동부동 인사들과는 별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경비가 더욱 삼엄해진 와중에도 읍내 장터 시위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 기독교 측에서 태극기 제작을 맡고 천도교 측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마침내 1919년 3월 7일이 되자 동부동 예배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모인 시위대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날의 시위는 장터에 모인 사람들까지 만세를 부르며 합류하였고, 규모가 더욱 커져 5천여 명의 인원이 되어 군청과 경찰서가 있는 철산군의 서편으로 향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의 요청에 따라 철산에 증파된 철도원호대가 시위대를 따르며 해산을 강요하다가, 우편국 앞에서 시위 군중이 우편국을 향해 돌을 던지자 이것을 빌미로 실탄을 쏘며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시위대 7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50여 명이 중상을 입는 큰 피해 끝에 강제로 해산 당하고 말았다. 이때 읍내 시위에 참여하여 강제로 해산 당하였으나 현장에서 붙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4월 8일부터 일제 경찰은 시위 주도자와 시위 지휘자, 선언서와 태극기 제작자들을 본격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하지 않은 단순 참여자들도 잡아들이고 고문하였다. 같은 동네에 살던 송내경(宋迺景)·송국흥(宋國興) 등과 함께 붙잡혀 모진 고문을 동반한 조사를 받았다. 신의주지방법원을 거쳐 1919년 5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징역 6월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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