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운
宋光雲1889. 8. 7 ~ 1967. 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9년 8월 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송전리(松田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1919년 4월 4일부터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등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 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竝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한집에 한 명씩 도로 보수를 위해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각 마을의 이장과 주민 약 500명이 모였다. 이때 면장 이인정은 “도로수선 때문이 아니라 조선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불러모은 것”이라면서 만세를 외치며 정미면 천의장터로 행진할 것을 제안하였다.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천의장터로 나아갔다. 오후 4시경 800여 명으로 증가한 군중이 천의경찰관주재소와 정미면사무소 일대를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순사들이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권총을 발사하자 천의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간 군중은 일본인 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일제 군경은 서산경찰서와 당진경찰서의 경찰 8명과 홍성수비대의 보병 5명을 파견하였으며, 서산의 재한일본인들을 동원하여 주도자들을 붙잡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4월 8일에는 송전리에서 20여 명이 경계 중인 경찰관과 보병을 공격하였다. 경찰 6명과 보병 2명이 발포하여 2명이 사상하였다. 조금리(調琴里)에서는 70여 명이 만세운동을 재기하려다 일제 군경의 발포로 2명이 사상하였다. 정미면 수당리(壽堂里) 등지에서도 300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대호지면과 정미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만세를 외치고 행진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4월 26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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