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섭
宋景燮1890. 1. 5 ~ 1949. 3. 3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홍천군 홍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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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90년 1월 5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홍천면(洪川面) 희망리(敎望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송성보(宋聖補)를 사용하였으며, 기독교 감리교인(監理敎人)이다. 1919년 당시 잡화상(雜貨商)을 운영하면서, 4월 1일 홍천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홍천군의 만세운동은 홍천감리교회(洪川監理敎會)에 다니는 차봉철(車奉哲)이 주도하여 계획하였다. 서울에서 직접 만세운동을 목격한 차봉철은 고향으로 돌아와 기독교인 서상우(徐相佑)·천도교인(天道敎人) 오창섭(吳昌燮)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세 사람은 4월 1일 신장대리(新場垈里)에서 장이 서는 때를 기회로 삼아 각자 교인들을 모아 시위를 준비하였다. 차봉철과 서상우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규합하였고, 이 과정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 때 쓸 작은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아침 일찍 주도자들과 함께 장이 열리는 신장대리 장터로 향하였다. 북방면 하화계리(下花溪里)·중화계리(中花溪里) 등지 주민들은 홍천·인제(麟蹄) 간 도로 공사가 있는 것을 이용하여 부역 인부로 가장하고 장터로 모였다. 그 때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장꾼과 장터에 모인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며 시위가 펼쳐질 예정임을 알렸다. 오후 1시경, 천도교인 오창섭과 김영옥(金永玉)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들어오자, 군중들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이때 주도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주민들도 모두 만세를 외쳤다. 200여 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장터를 돌며 만세시위를 펼쳤고, 이어서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군중들이 참여하면서 시위대는 어느덧 5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으며, 헌병분견소로 향하였다. 그러나 만세운동 소식에 일본은 춘천수비대와 헌병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막아섰다. 헌병들의 저지에도 시위를 이어갔으나 헌병들이 무력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면서 만세시위도 끝이 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6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7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다시 한번 상고하였지만, 이 역시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이듬해인 4월 20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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