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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선

孫昌善

1896. 11. 13 ~ 198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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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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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1896년 11월 13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죽림리(竹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홍성군 금마면에서는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의 주도로 1919년 4월 1일부터 2일 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1일 이래 전국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협의하여 금마면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4월 1일 가산리(佳山里)의 연극공연을 만세운동의 기회로 이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도자들은 4월 1일 일찌감치 임시 연극공연장으로 가서 관객으로 입장하여 연극을 관람하였다. 아직 연극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 경 이들은 객석에서 일제히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3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동참하면서 연극 공연장은 곧바로 만세시위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시위가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자 5명을 붙잡아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하였던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할 수 없으나,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끌려갔다. 일제 경찰의 가혹한 조사 끝에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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