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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창

孫晋昌

1852. 8. 9 ~ 194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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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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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慶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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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4)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4) 1852년 8월 9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천북면(川北面) 화산리(花山里, 현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하고 경주 내에서 유학 교육에 종사하였다. 영남 유림의 일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문제를 다루는 베르사유 조약과 민족자결주의 제창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배경으로 추진된 유학자들의 독립청원 계획에 참여하였다. 1919년 당시 유림은 김윤식(金允植)과 이완용(李完用) 등의 명의로 발표된 「한일불이청원서(韓日不離請願書)」가 한국 유학자들이 독립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처럼 유교계의 의견을 곡해하는 데 분노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유림은 3월 1일 민족대표들에 의한 독립선언에도 대표자를 보내지 못해 독립선언은 유교계 인사가 없이 발표되었다. 유학자들은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는 파리로 유림의 탄원서를 발송하여 한국 유림의 독립 의지를 내비치고자 하였다. 이 계획을 수립한 경상남도 거창의 곽종석(郭鍾錫)은 경상북도 성주의 장석영(張錫英), 김창숙(金昌淑) 등과 회합하고, 각자 격문을 작성한 다음 문장을 절충하는 형태로 장서를 제작하였다. 그 결과 한국과 일본이 본디 다른 나라이며, 일본은 한국인들을 탄압하고 고종을 시해하기에 이르러 한국인들이 독립만세를 외치게 되었으니 한국이 마땅히 독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한국유림송파리평화회서(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가 3월 15일 완성되었다. 이들은 영남 각지의 유학자들 앞으로 사람을 보내어 장서에 서명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러한 부탁을 받고 경주의 대표로서 손병규(孫秉奎)와 함께 장서에 서명하였다. 이 파리장서(巴里長書)는 한문 3,000부, 영문 2,000부가 인쇄되어, 김창숙을 통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되었으며, 한문본은 국내 각지의 향교에 보내졌다. 일제 경찰은 1919년 4월 성주 만세운동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들을 통해 파리장서 작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 6월 경 김창숙이 국내로 발송한 파리장서를 입수하여 서명자들을 체포하였는데, 이때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혔다. 일제는 민심 악화를 우려하여 곽종석·장석영 등 주도자들만을 체포하고 나머지 서명자들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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