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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송

孫周松

미상 ~ 191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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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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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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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강계군 강계읍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평안북도 강계(江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은 확인되지 않는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상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월 8일 강계군 강계읍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강계 지역의 만세운동은 기독교계열과 천도교계열 학교의 교원과 학생, 기독교와 천도교의 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19년 3월 15일 밤, 강계읍내 각지에 ‘한국독립만세’라고 적힌 지편(紙片)이 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지만 3월 중순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기독교 측 인사였던 영실중학교 교사 김경하(金京河)와 동료 교사 정준(鄭儁), 교회 장로이자 명신학교 학감(學監) 한봉민(韓奉珉)이 물밑에서 여러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만세운동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영실중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주도하려고 하였는데, 교사 김경하가 현재 만세시위가 논의 중에 있으니 때를 기다릴 것을 주문하며 제지하였고, 대신 학생들은 태극기 2천여 장을 제작해서 여러 곳에 은닉한 채 대기하였다. 김경하 등은 점차 기독교 인사뿐만 아니라 천도교 측과 일반 유지들에게도 만세시위에 대한 의사를 타진하며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인 21명의 인사들이 3월 24일 첫 회의를 갖고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고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연판장에 서명 날인하였다. 이튿날인 3월 25일에는 구체적인 만세 시위 준비 작업을 논의하였다. 강계군 만세시위 준비과정에서 서울의 독립선언서를 입수하는 것이 쉽지 않아 만세시위가 늦어지고 있었다. 이에 독립선언서 준비를 담당했던 기독교 측에서 각 방면으로 탐문하던 중 천도교 신도 송기숙(宋紀叔)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교섭해 보았으나 후환이 두려워서 내놓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 재학 중 만세운동 이후 휴교로 인해 귀향한 주하룡(朱河龍)이 평양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온 것으로 꾸미기로 하고 송기숙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다. 독립선언서는 미국인 선교사 함가륜(咸嘉倫, Hoffman, C.) 목사의 집에서 김창욱(金昌郁)이 원지글씨를 쓰고 역시 미국인 선교회에서 경영하는 계례지병원에서 2천장을 등사하고 병원 지하실에 숨겨두었다. 4월 8일 11시 미리 약속한 대로 강계읍내 남장대(南將臺) 예배당의 종소리에 맞춰 학생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날은 마침 장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강계읍에 모여 있었는데 그들도 시위에 합세하여 시위대는 곧 수천 명의 군중으로 불어났다. 시위대는 남문 방면의 ‘자래바우든덕’에서 출발하여 군청, 헌병분견소, 천도교당 등이 모여 있는 북문 방면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헌병분견소를 지나 북문에 다다랐을 즈음, 갑자기 기마 헌병들이 총칼을 들고 군중을 위협하였고 북문 성루 위에서 매복하였던 수비대가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때 시위의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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