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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일

孫鍾一

1871. 12. 6 ~ 194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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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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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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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칠원면 칠원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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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1871년 12월 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칠원면(漆原面) 구성리(龜城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1919년 3월 24일과 4월 3일에 일어난 함안군 칠원 장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08년 4월 19일 두 칸 짜리 초가를 구입해 칠원교회를 설립하는 데 참여하고 초대 장로로서 교회 재정을 관리하였다. 아내 김은주 집사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으며, 그중 장남이 ‘한센인 대부’로 불리는 손양원(孫良源, 본명 손연준)이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기독교계를 통해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엄주신(嚴柱信)·박경천(朴擎天)·윤형규(尹兄珪)와 함께 함안군 칠원면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대형 태극기 1기와 소형 태극기 약 30여 개를 제작하였다. 3월 23일 함안지역에서 만세운동의 기미가 보이자 마산 중포대대로부터 장교 이하 11명이 파견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음 날인 3월 24일 칠원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장터에 모인 약 200명의 군중은 오후 4시가 되자 약 700~800명으로 증가하였다. 주도자들이 시장 밖에서 만세를 외친 후 태극기를 높이 흔들면서 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그러자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오후 9시 약 200~300명의 군중이 칠원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붙잡혀 간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경찰관 10명과 마산중포대대는 무력 진압으로 시위대를 해산하였다. 4월 3일 칠원 장날, 만세운동은 재개되었다. 오후 3시 6~7명의 주도자들은 장터의 군중 속에서 사전에 협의한 대로 순서에 따라 엄주신이 작은 태극기를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이후 엄주신과 함께 미리 준비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엄주신이 이를 따라 만세를 불렀고,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만세를 연호하였다. 일제 군경의 탄압으로 일시 해산하였으나 오후 5시 30분경 약 6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군중은 다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읍내를 열을 지어 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엄주신·윤형규·박경천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그 해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마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다시 칠원교회 장로로서 교회 사무를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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