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의
孫鍾毅1876. 8. 8 ~ 1925. 3.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안동군 안동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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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76년 8월 8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소천면(小川面) 고선리(古善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3일 안동군(安東郡) 안동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안동군에서는 이상동(李相東)의 안동면 1인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확대되었다. 3월 17일에 일어난 예안면(禮安面) 만세운동에는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3월 23일에는 안동군에서 가장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2차 안동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3월 23일 안동면 장이 거의 끝날 무렵인 저녁 7시경 사방에서 군중들이 장터로 들어오면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미 지난 3월 18일 장날에 ‘1차 안동면 만세운동’이 일어났었기 때문에 일제 경찰들은 장날을 예의주시하며 대비하고 있었다. 군중들의 독립만세 외침으로 시위가 시작되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총을 발포하였고 총탄에 맞아 사망자도 발생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투옥되었으며 만세운동은 새벽까지 격렬하게 이어졌다. 만세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오후 8시경 안동읍 권대경(權大經)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1919년 당시 재목상(材木商)으로 고향 마을인 봉화군 소천면에서 울진군(蔚珍郡) 서면(西面) 전곡산(前谷山, 현 금강송면(金剛松面) 전곡리)의 목재를 매입하기 위해 안동에 있는 목주를 방문하고 권대경의 집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사방에서 만세소리가 들리고 약 10발의 총성이 들렸다. 총성이 멈출 때 까지 기다린 후 11시까지 숙소에 머물다가 소리가 잦아들자 목주의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만세시위 후 경계를 서고 있던 일제 경관과 소방대와 맞닥뜨렸다. 이때 일제가 만든 경계선을 뚫고 지나가려고 하였고, 이를 본 경관과 소방대는 만세운동에 참가한 자라고 하며 강제로 경찰서에 끌고갔다. 강제로 경찰서에 끌려간 후 구타 당하고 머리에 검을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러한 가운데 유치장 앞마당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두 번이나 외쳤다. 이러한 기습적인 만세시위에 놀란 경찰관은 급히 제지하고 조사에 나섰다. 조사 과정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이유를 추궁 받자 “일제가 강제로 한국을 병탄하였으며 한국민들은 일제 치하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항변하였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4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면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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