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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학

孫永學

1895. 6. 4 ~ 194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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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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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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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 ·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5년 6월 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19년 3월 안동군 길안면(吉安面) 천지(泉旨)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고, 풀려난 후 1926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같은 마을에 사는 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과 함께 길안면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주도자들은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자신의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논의한 끝에 길안면 천지리에 장이 서는 장터를 만세운동 장소로 결정하였다. 길안면 천지 장터는 오대동에서 가까운 곳으로 오대동 사람들의 참여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천지 장터 만세운동이 일어난 3월 21일은 임동면(臨東面)과 임하면, 일직면(一直面)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나면서 안동군 만세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만세시위가 전개된 날이었다. 만세운동을 준비하면서 함께 할 사람들을 규합하였고, 정성흠(鄭成欽)·정태모(鄭泰摸)·김술병(金述秉)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우선 거사에 쓰일 태극기를 각자 준비하기로 하고, 김정익·김정연과 함께 시장에서 당목(唐木)을 사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들어 두었다. 1919년 3월 21일 거사 당일, 만세운동의 움직임을 파악한 일제 경찰이 그들을 예의주시하자 큰 기를 숨기고 들어오기 위하여 주도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장터에 도착하였다. 오후 3시경 만세시위 주도자들과 참여자들이 장터에 모두 모이자 장터 중앙에 「대한독립만세」가 쓰여 진 큰 기를 세웠다. 그리고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리에 장터에 있던 장꾼들과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시위의 열기가 높아지자 주도자들과 35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길안면 사무소로 향하였다. 이때 깃발을 흔들며 선두에 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면사무소에 도착한 이후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면장과 서기의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면서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그들을 막아서며 제지하자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항거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창문과 문에 돌을 던져 완강히 저항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시위대를 이끌고 천지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를 포위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 서서 시위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충돌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또 한 번의 투석전이 벌어졌고, 시위대의 격렬한 항거가 이어지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며 위협하였다. 총탄에 사상자 발생을 우려한 시위 주도자들은 부득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다음날부터 경찰들의 만세시위 주도자들의 검거 작전이 시작되자 김정익·김정연과 함께 의성군(義城郡)에 사는 박재하(朴在夏)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박재하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 위하여 자금을 마련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결국 천지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와 망명 자금 마련을 위해 공모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1920년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 위반, 강도예비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은 6월 12일 이를 기각하여 징역 5년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1926년 2월에는 유연복(柳淵福)과 함께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가 일제 경찰에 활동이 발각되어 붙잡혀 다시 징역 5년을 받았다.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10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시 상고하였지만 이듬해 1927년 2월 3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를 기각하면서 징역 5년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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