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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영

成泰永

1876. 1. 24 ~ 1946.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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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성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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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金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김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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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김포 월곶면 군하리(3.2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6년 1월 24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고양리(高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월곶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2일 다른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박용희(朴容羲)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일 같은 면 군하리(郡下里)의 백일환(白日煥)과 그 부인 이씨(李氏, 신학생)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을 원하는 자는 공자묘(향교)로 모이라”고 권유했다. 이 날은 군하리 장날로 박용희·이병철(李柄喆) 등의 협조를 얻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수백 명의 군중 속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은 호응하여 만세시위 행진을 벌였고, 월곶면사무소로 시위행진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때 만세시위 과정에서 면사무소 위로 올라가서 “우리는 독립을 취해야 한다”면서 군중에게 일대 연설을 하였다. 총독부 경찰이 끌어내리려 하면서 육박전이 벌어졌다. 특히 군하리경찰관주재소 순사 야마다(山田重洋)가 제지하려고 하였다. 이때 백일환이 순사의 따귀를 때리고 땅 위에 내동댕이친 다음 순사의 총과 칼을 빼앗고, 다른 여러 사람과 십 수 회 난타하여 그의 칼과 모자를 상하게 하였다. 이후 선두에 서서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포위했고, 백일환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가 마루 밑에 숨어 있던 조선총독부 순사보 이성창(李聖昌)을 끌어내 조선민족이니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하였다. 안에 함께 있던 일제 경찰이 막자, 이 순사보를 끌고 밖으로 나가서 군중과 함께 구타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검거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이 취소되고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60일 산입)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후 1920년 4월 28일 이른바 은사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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