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樂朋
成朋1881. 11. 19 ~ 1919. 4.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남도 홍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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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1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도고면(道高面) 석당리(石堂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홍성군(洪城郡) 홍동면(洪東面) 신기리(新基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홍성군 만세운동은 이명종(李鳴鍾)·박원식(朴源植)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이명종은 1919년 3월 6일 박원식의 동생 박세화(朴世和)로부터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듣고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3월 8일 독립선언서를 참고로 관련 내용을 종이 2장에 크게 적어 광천시장과 옹암리 2개소 벽에 부착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를 더 많이 등사하여 배부할 것과 광천시장 장날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협의하였다. 또한 최응모(崔應模)·오인섭(吳仁燮)·성배호(成培鎬) 등도 함께 만세시위를 합의하고, 3월 16일 박원식은 서승태(徐承台)에게 독립선언서를 보여 주고 독립운동을 알릴 글을 부탁하였다. 이어 오인섭 집에서 박원식·이명종·최응모·성배호 등이 회합을 갖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기로 합의하였다. 박원식이 필기한 원고를 참고로 독립선언서 약 510장을 만들었다. 이 독립선언서는 그날 밤에 이명종·성배호·오인섭 등이 광천리와 옹암리 일대에 배포하였다. 3월 21일에는 광천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있었고, 4월 5일에는 독립만세를 부르려는 시도가 있었다. 금마면에서는 민영갑(閔永甲) 등의 주도로 4월 1일 가산리에 임시로 설치된 연극 공연장에서 있었다.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이원교(李元交) 집에서 연극을 관람하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협의하였다. 이어 최중삼(崔仲三)·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에게도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고 찬동을 얻었다. 4월 1일 오후 8시경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중에 조한원이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관중 수십 명이 따라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4월 4일에는 금마·홍북·홍동·구항 등 4개 면, 24개 마을 주민들이 마을 주위 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횃불만세운동이 있었다. 이날 4개 면의 24개 마을 공동 횃불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이제경·조우식·이희도·한명교·이석만·안중호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횃불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만세시위에 대해 일제는 경찰과 군 병력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탄압을 가하였다. 일제수비대가 시위 군중을 포위하고 집중 사격을 가하였을 때 현장에서 총에 맞고 다음날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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