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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령

徐鎭泠

1899. 5. 4 ~ 197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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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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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동래군 동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9년 5월 4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상동면(上東面) 우계리(右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에 다니고 있다가 3월 13일 동래군 동래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7일 부산의 공립상업학교 학생들에게 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 등 같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1919년 3월 11일부터 13일 사이에 엄진영(嚴進永) 등 다른 학생들과 함께 동래면 수안동 이한주(李漢周)의 집으로 찾아가 독립운동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독립선언서 500부 인쇄, 대한국 독립만세기 2개, 태극기 수백 개, 고종 독살설에 관한 격문 수백 장을 만들었다. 1919년 3월 13일 10여 명과 함께 동래면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읍내를 행진하며 사전에 준비한 독립선언서, 태극기,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고 쓴 격문 등을 배부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에 나온 군중들이 만세운동에 합류하여 한때 200여 명에 이르렀다.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중 출동한 일본군과 기마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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