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오
徐廷五1879. 7. 13 ~ 1939. 3.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음성군 원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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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879년 7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원남면(遠南面) 문암리(文岩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5일 음성군 원남면 보천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음성군 최초의 만세운동은 초천리(草川里) 서당의 학생이었던 김영익(金榮翼)·정민영(鄭珉永)·최만득(崔萬得)·정대영(鄭大永) 등이 음성면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킨 1919년 3월 28일에 있었다. 이후 음성군에서는 4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원남면에서는 4월 5일 보천리(甫川里)의 보천시장 만세시위 이래 4월 11일의 주봉리(住鳳里) 만세시위까지 약 3회에 걸쳐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5일 보천시장의 만세시위는 원남면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주도자는 알려지지 않는다. 1919년 4월 5일 보천시장의 장날로 장에 나갔는데, 시장의 한복판에서 누군가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대한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공감하여 이교설(李敎卨)·장일귀(張日貴)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점차 만세시위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어나, 시위대의 규모는 2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날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8일에는 상노리(上老里)와 하노리(下老里)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1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참여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지역을 행진하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4월 11일에는 주봉리에서 약 80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일련의 만세시위 이후 원남면 지역으로 파견된 일제 음성수비대(陰城守備隊)의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색출·검거 과정에서 이교설·장일귀 등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이후 원남면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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