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서정기

徐正基

1903. 1. 24 ~ 1969. 7. 2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정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청도군 대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3년 1월 24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내호동(內湖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청도군 대성면 유천시장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3일 동네에 있는 서당에서 약을 판매하면서(賣藥業) 장로교회 조사(助事)로 일하던 김보곤(金寶坤)을 만났다. 이때 김보곤을 통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 중인 만국강화회의(萬國講和會議)에 대한 소식과 서울·평양 등지의 만세시위에 대한 소식을 접하였다. 또한 김보곤에게 마을 주민 조차상(趙且尙)과 함께 3월 14일에 유천시장(楡川市場) 장날을 기하여 청년·학생들과 장날에 온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만세시위를 조직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에 김보곤이 건네 준 태극기를 조차상과 나누어 받았다. 조차상과 함께 김보곤의 지휘에 따르기로 하고 같은 동네 주민인 김타관(金他寬)·정술문(鄭述文)도 유천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또 이들에게 밀양공립보통학교(密陽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동원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3월 14일 시위에 참여하라”는 통지서를 발송할 것을 지시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9년 3월 14일 유천시장에 갔으나 만세시위에 참여하려는 인원이 약 60~70여 명 밖에 없고 일제 경찰의 단속도 심하여 결국 만세시위를 일으키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후 일제 경찰에게 유천시장 만세운동 계획이 발각되어 김보곤·김타관·정술문·조차상 등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으나 징역 6월을 다시 받았다. 재차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