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영
徐在英187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성진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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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성진면(城津面) 욱정(旭町) 출신이다. 1919년 고등법원 판결문에는 43세로 기록하고 있어 187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음식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9일 성진군 성진읍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2월 중순부터 성진군에는 서울의 만세운동 준비 소식이 전해졌다. 함흥 학생단체 소속의 박승봉(朴承鳳)은 성진군에 와서 지역 개신교 인사들에게 서울에서 민족적 거사가 있을 것이며, 성진군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을 전개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성진군 내의 개신교 인사들은 그레이슨(Robert G. Grierson, 구례선(具禮善)) 목사가 운영하는 제동병원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날 모임에서는 만세시위 준비에 대해 논의하였다. 3월 7일 강학린은 그레이슨 목사의 집에서 욱정교회(旭町敎會) 신도들과 함께 비밀리에 회합을 가졌다. 그레이슨 목사도 참석한 회합에서는 서울로 사람을 파견해서 그 곳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한편 욱정교회에 다니는 김상필·이효근·서유진을 비롯한 청년 6인은 그레이슨 목사관의 방에서 함흥영생학교(永生學校) 졸업생 허용필(許容弼)이 서울에서 비밀리에 입수한 독립선언서와 격문 30,000매를 인쇄하였다. 3월 7일을 전후로 3월 10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한 준비들을 진행하는데 동참하였다. 3월 10일 오전 10시 제동병원 앞에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5,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성진면 일대를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에는 개신교 계열의 보신학교 학생 40여 명과 개신교인 200여 명이 중심이 된 시위대가 일본인 상가, 경찰서, 우체국을 돌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밤 11시 무렵에는 보신학교 교사 2인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성진군 당국에서는 기병대, 보병, 재향군인, 소방대를 동원해서 만세시위를 진압하고자 했다.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고 그 기세를 꺽을 수 없게 되자,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무력을 동원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으며, 성진면에서 시작한 만세시위는 북부 해안 지역에 위치한 학동면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3월 10일 밤 선교사 프록터(S.J. Proter, 부록도(富祿道))의 고용인인 마성녀(馬姓女)의 집에서 비밀리에 『독립신문』을 출판하였다. 그 때 제작한 『독립신문』은 김학천(金學天)이 입수한 후 3월 11일 저녁에 강도희(姜道熙) 집에서 학동면 만세시위를 준비했던 김홍종(金洪鍾)·허채(許採)·유명식(劉命寔)·이경화(李景和)와 함께 회람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에 일제 군경에 의해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그 해 9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이 취소되고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1919년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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