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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익

徐丙翼

188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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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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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통천(通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통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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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4월 5일 ~ 7일 통천군 순령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3)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순령면(順嶺面) 하고저리(下庫底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서상각(徐尙恪)을 사용하였다. 1919년 통천군 순령면에서 4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동안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특히 만세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4월 6일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통천군 순령면 만세운동의 첫날은 4월 5일 밤, 부두 노동자들의 만세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순령면 고저리는 항구가 있어 일찍부터 상업과 어업이 발달하였고, 노동자들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부두 노동자들의 만세시위에 서당 생도와 노동자들도 합세하면서, 20명에서 시작된 시위가 200여 명이 넘는 대규모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군중들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시위를 펼쳤으며, 출동한 경찰이 주동자 등 4명을 체포하면서 시위대도 해산하였다. 4월 6일 시위에는 상·하고저리 주민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임낙규(林洛奎)·한창수(韓昌洙)·이평수(李平銖) 등과 같이 만세시위에 나섰다. 낮에 시작된 시위는 저녁까지 이어졌으며, 1,300여 명이 만세를 외치며 항구와 마을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수정(李守丁)·임낙규(林洛奎) 등과 선두에서 군중들을 이끌었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경찰주재소·우편소 건물을 공격하였고, 일본인 주택과 중국인 상점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펼쳤다. 만세시위가 확대되자 일본은 고성(高城)에 주둔 중인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 진압에 나섰다. 군경의 사격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하였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음날 시위에도 2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연호하며 거리를 누볐다. 군중들과 함께 전날처럼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무력항쟁을 펼쳤다. 이에 일본은 헌병을 급파하여 총을 쏘면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후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15일 함흥지방법원 원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3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을 취소하였지만, 형량에는 변함이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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