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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익

徐東翼

188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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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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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용강(龍岡)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용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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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평안남도(平安南道) 용강군(龍岡郡) 용월면(龍月面) 대영리(大永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32세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6일 용강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독립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때가 한국 독립의 좋은 기회라고 기대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의 독립선언 발표와 이로 인해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날 용강군에도 평양 천도교구를 통해 유한기(劉漢基)에게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3월 2일 용강면(龍岡面)과 지운면(池雲面)에서 만세운동 움직임이 있었다가 3월 3일 지운면 진지리(眞池里)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서울의 독립선언서 선포와 용강군 내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3월 4일~3월 6일 평남 용강군 용월면 일대의 대영리와 마동리(麻洞里)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평남 용강군 용월면 일대의 만세운동은 3월 4일 마동리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24명이 체포되었다. 만세운동은 이튿날 대영리로 이어졌다. 3월 5일 오후 9시경 노삼환(盧三煥)의 주도로 대영리 주민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6일 노삼환은 주민들을 모아 마동리로 이동하였고 마동경찰관주재소(麻洞警察官駐在所)로 가서 순사보와 언쟁을 하며 만세운동의 정당성을 피력하였다. 일제 경찰이 한국인 순사보를 통해 마을 주민을 동원하여 경찰관주재소를 지킬 것을 지시하자 이정순(李貞淳) 등 마을 주민들이 이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당시 대영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용강군 만세시위 주도자로 지목되어 1919년 3월 16일 마동경찰관주재소에 붙잡혔다가 평양지방법원 진남포(鎭南浦)지청에서 평양지방법원으로 압송되어 같은 해 일자미상일에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만세운동은 “조선 민족으로서 당연한 것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토를 잃은 민족의 바꿀 수 없는” 요구라며 항소하였다. 그러나 그 해 6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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