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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병각

夫秉恪

1898. 12. 13 ~ 196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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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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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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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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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98년 12월 13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齊州)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길전병각(吉田秉恪)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제주군 신좌면 조천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제주도에서는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에 걸쳐 나흘 동안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6일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 재학 중이던 김시학(金時學)의 아들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여,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이 함께 만세운동을 결행하기로 다짐하였다. 유학자 김시우(金時宇)의 제삿날인 3월 21일을 시작으로 조천리 미밋 동산(味毛峙)에 모여,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서당 학생들을 비롯하여 2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이날 시위에서 김시범과 김시은을 비롯하여 13명과 함께 붙잡혔다. 3월 21일 시위에 이어 다음날인 22일에도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3월 23일에 이어 조천 장날인 24일까지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22일 4명, 23일 8명이 연이어 붙잡혔고, 시위대와 일제 경찰의 충돌이 지속되었다. 이에 일경은 발포로 무력 대응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3월 24일에는 김년배(金年培)를 중심으로 하여 1,500여 명이 군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며, 다시 4명이 붙잡혔다. 1919년 3월 21일 첫 만세시위가 일어난 날 붙잡혔다. 그해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20년 칙령 제120호에 의해 징역 3월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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