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종
徐三鍾1896. 12. 12 ~ 1972. 2.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강경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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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6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세도면(世道面) 청포리(菁浦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서산종(徐山宗)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3월 10일 강경읍(江景邑) 장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강경읍의 만세운동은 이 지역에 소재한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 교사 엄창섭(嚴昌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엄창섭은 3월 초 고향인 전북 익산(益山)에 체재하던 중, 3월 5일 군산(群山) 소재 영명학교(永明學校)의 학생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에 엄창섭은 전국적인 만세운동에 크게 찬동하여 만세시위를 조직할 것을 결심하였다. 강경으로 돌아온 엄창섭은 곧바로 만세시위 준비에 착수하였다. 3월 6~7일 경 자신이 근무하는 창영학교로 고상준(高相俊)과 추병갑(秋炳甲)을 불러 만세시위를 논의하여 의기투합하였다. 이들은 강경읍의 장날인 3월 10일을 만세시위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인 만세시위 준비를 하였다. 김종갑(金鍾甲)과 추성배(秋聖培)가 새롭게 동지로 결합하여 이들은 10일까지 태극기 200여 본을 제작하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거사일에 옥녀봉(玉女峰)으로 모이라고 사전에 연락하였다. 이 과정에서 엄창섭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당일인 3월 10일 아침 엄창섭의 지시로 태극기 200여 본을 가마니에 넣어 옥녀봉으로 운반하였다. 이날 오후 3시 경 정기섭(鄭沂燮)·한규섭(韓圭燮) 등 사전에 연락받은 주민 300여 명이 옥녀봉에 모였다. 강경 장터로 가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엄창섭의 연설에 옥녀봉에 모인 주민들이 크게 호응하자, 엄창섭 등과 함께 이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강경 장터로 향했다. 강경 장터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속속 동참하였다. 엄창섭의 지휘에 따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본정통(本町通)을 경유하여 강경 장터와 읍내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다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같은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새롭게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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