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선
徐秉善1900. 9. 26 ~ 1973. 5.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인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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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900년 9월 26일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인제면(麟蹄面) 남북리(南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서병탁(徐秉卓)을 사용하였다. 1919년 인제군청의 고원(雇員)으로 근무하였다. 그해 3월 인제군 인제면 장날을 이용한 만세운동 계획 추진에 참여하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인제군에서는 아직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3월 중순 무렵 춘천에 갔다가 춘천감리교회(春川監理敎會) 목사 이병찬(李炳燦)을 만나 독립선언서 수십 장을 받아 인제로 돌아왔다. 인제군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하고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인제보통학교 4학년생인 이성종(李聲種)과 졸업생 심한구(沈漢龜), 상동리(上東里)에 사는 이종근(李鍾根)과 비밀리에 만나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3월 29일 인제군 장날을 이용하여 의거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독립선언서 외에도 선전문을 따로 만들어 마을 요소요소에 붙이기로 하였다. 선전문에는 “이번의 운동에 대해 군수와 학교장들이 말하는 것에 따르지 말고 각자가 뜻한 바를 향하여 매진할 지어다”라고 썼다. 동지들과 논의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담당지역을 나누어 만세운동을 전하기로 하였다. 읍내를 맡아서 주민들을 만나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전하면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임을 알렸다. 또한 직접 작성한 선전 문서를 마을 여러 곳에 붙이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일제의 감시망에 활동이 포착되면서 시위 이틀 전인 3월 27일 밤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인제군의 만세운동은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6월 2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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