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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준

卜基俊

1884. 11. 27 ~ 1957.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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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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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4년 11월 2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홍성군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마을에 서당을 열어 어린 학동들을 가르치면서 국권 상실 이후의 정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였고,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동지로 확보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이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주도자들은 연극공연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다가, 끝날 무렵인 오후 8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수십 명의 주민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만세시위 발생 이후 일제 경찰이 출동하였으나, 체포된 사람 없이 해산하고 마무리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사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끌려갔다. 결국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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