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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열

卞鍾悅

1896. 3. 15 ~ 1974.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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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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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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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창원군 삼진 지역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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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3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良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삼진(진동면·진북면·진전면) 지역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고초를 겪었다. 창원군의 만세운동은 8차례 만세시위와 3차례의 만세시위 계획 등이 확인된다. 삼진 만세시위는 군내 가장 큰 규모로 전개된 시위 가운데 하나였고, 일본군의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만큼 가장 격렬하였다. 진전면·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 지역을 합쳐서 삼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삼진의거’라고도 부른다. 거주지인 진전면 양촌리에서 시작한 삼진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8일 진동면 고현(古縣)시장 만세시위와 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변상태(卞相泰) 등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이 중첩되기 때문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은 고현시장 시위가 일제 군경의 폭력적 진압에 해산당하고 주도층이 대거 연행된 이후 진압을 주도한 진동면 헌병대를 규탄하고 이들이 끌고 간 민족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큰 규모의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의 만세시위 준비 작업에 백승학(白承鶴)·황태익(黃泰益)·변상헌(卞相憲)·구수서(具守書)·변우범(卞又範)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일제 군경의 감시망에 계획이 포착되지 않기 위하여 준비 작업을 위한 회합은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은밀하게 진행하였다. 거사일은 1919년 4월 3일로 결정하였고 시위 시작 장소는 진전면 양촌리 냇가로 하였다. 준비 모임에 참가한 주도자들은 지역을 나누어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고,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연락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만세시위에 사용할 큰 태극기 6개와 군중들에게 배포할 작은 태극기 수십 장도 만들었다. 거주지이자 만세시위 시작 장소인 진전면 양촌리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태극기 등 시위 도구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거사일인 4월 3일 아침 일찍 양촌리 냇가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인근 지역 주민 1,0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오전 9시 미리 제작한 큰 태극기를 세우고 시위 주도자들 중 한 명인 변상태가 군중들을 향해 만세시위를 독려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어진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선창을 신호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으며, 변상태 등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선창하였다. 양촌리 냇가에 운집한 군중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만세를 따라 불렀다. 이후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대와 함께 인근 마을들을 돌았고, 이들을 지휘하여 폭력적 진압을 자행하고 다수의 군중을 연행해 간 진동헌병주재소로 이동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진동면으로 행진할 때 인근의 주민들이 계속 합류하였다. 한편 백승학(白承鶴) 등의 주도로 진동면 주민들도 소풍을 가장하고 진동 성터 뒤를 돌아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진동면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는 최소 2,000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같은 날 오후 2시, 시위대와 함께 진동면 사동리(社洞里) 사동천교(社洞川橋)에 도착하였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만세를 부르며 진동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진동헌병주재소 헌병들과 헌병보조원, 그리고 일본인 재향군인 등 30여 명이 출동하였다. 이들은 마산(馬山) 중포병대대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총검을 휴대하고 사동천교 맞은편에서 시위대와 대치하였다. 오후 3시에는 마산중포병대대에서 급파된 일본군 지원병들이 합류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동천교를 사이에 두고 대치중이던 시위대가 일본군을 향해 돌진하면서 몸싸움이 시작되었고, 진행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기세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일본군 병사 일부도 부상을 당하자 일본군은 비무장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현장에서만 8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주도자로 붙잡혔다. 헌병대에 끌려가 고문을 동반한 모진 조사를 받고 결국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져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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