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축용
成丑鏞1923. 2. 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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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923년 2월 5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부용면(芙蓉面) 외천리(外川里, 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4월에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였다.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 3학년 재학 중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결성된 학생비밀결사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하였다. 문예부는 1940년 11월 학교에서 독서 토론 활동을 벌이고 있던 박효준(朴孝濬)의 주도 아래 강두안(姜斗安)·이태길(李泰吉)·박찬웅(朴贊雄)·유흥수(柳興洙)·문홍의(文洪義)·이동우(李東雨)·김근배(金根培) 등이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이들은 국제 정세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패망이 확실하므로 다가올 독립을 위해서는 조직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문예부를 결성하였다. 활동을 주도하던 5학년이 졸업을 앞두고 조직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동기생 김보원(金普元)·조영진(曹永鎭)과 함께 가입한 것이다. 문예부는 일제와 학교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문예 활동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실력을 양성함과 동시에 단결하여 독립운동을 펼쳐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부원은 비밀을 엄수할 것, 매주 토요일 각자가 쓴 작품을 감상 비판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것 등을 활동 방침으로 정하였다. 부원들은 하숙방을 중심으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회합하여 부원의 작품 감상과 비평, 역사와 문화의 탐구, 국내외 정세 토의 등의 활동을 펼쳤다. 또한 학교 내 다른 비밀결사인 연구회(硏究會)와 다혁당(茶革黨)의 구성원들과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나갔다. 1941년 3월 문예부는 활동성과를 바탕으로 부원들의 작품을 수집 정리하여 기관지 성격의 『학생(學生)』을 간행하였다. 『학생』은 부원들이 한글로 쓴 시·소설·수필 등의 작품을 주로 싣고, 시국을 풍자하여 창작한 내용도 담았다. 문예부 부원뿐 아니라 민족의식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학생』을 배부하여 조직 확대를 꾀하였다. 문예부는 부원이 졸업하더라도 활동을 계속해 나가기로 결의하였다. 졸업생들은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활동 상황을 월 1회 보고하고 부원들이 각자 쓴 작품을 보내주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중순 활동 내용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미결 상태로 3개월여의 옥고를 겪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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