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우
成百愚1921. 8. 3 ~ 1950. 3.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1년 8월 3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신양면(新陽面) 귀곡리(貴谷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에 의한 창씨명은 성전백우(成田百愚)이다. 학창시절 임형선 등 동료들과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다가 고초를 겪었다. 1935년 4월 서울의 경기공립상업학교(京畿公立商業學校, 경기상업고등학교 전신)에 진학하였다. 4학년 재학 중이던 1938년 8월 고향으로 내려가 예산공립농업학교(禮山公立農業學校, 현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 학생 임형선(林炯善)의 하숙집으로 찾아가 한일 학생 차별에 대해 공감하고 항일투쟁을 벌이기로 하였다. 당시 경기공립상업학교는 한국인·일본인 공학이었으나 일본인 학생만 반장을 하게 되어 있었고, 한인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들에게 항상 냉대를 받았으며, 일본인 학생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임형선이 1940년 3월 예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자 상경하자, 다시 만나 “우리 민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일제로부터 독립해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인 가운에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적지 않다. 우리들이 서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어 한국 민중을 계몽하여 자각시켜야 한다”며 서로의 의지를 다졌다. 1940년 4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진학하였고, 2학년 재학 중이던 1941년 동급생 김상룡(金祥龍)·김용근(金容根) 등을 학교 뒷산이나 기숙사 등지에서 만나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곤 하였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한국 농촌의 피폐한 상황과 실업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에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구제책은 민족해방 뿐이므로 민족해방운동에 적극 나서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비밀결사 신사회(辛巳會)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고향에 내려가서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자퇴하고 귀향한 임형선을 찾아가 한국 농민이 피폐한 것이 일제의 압정(壓政)때문이라며 같이 농민을 구제하자는 의견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1942년 1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3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44년 9월 29일 가출옥하였다. 1944년 11월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44년 11월 말 다시 동대문경찰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미결수로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광복이 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