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도
宋相燾1871. 4. 12 ~ 1947.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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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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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71년 4월 12일 경상북도 영천군(榮川郡) 휴천리(休川里) 광승(廣升)마을(현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서 아버지 송학영(宋學永)과 어머니 박제천(朴齊天)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야성(冶城)이다. 자는 성소(聖韶), 호는 송강(松岡), 기려자(騎驢子) 또는 미헌(眉軒), 연파(蓮坡)이다. 애국지사의 행적을 찾아 기록한 『기려수필(騎驢隨筆)』의 저자이다. 어려서부터 가학으로 한학을 배웠으며, 장성하여 권상익(權相翊) 등 지역의 유생들과 교유하고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전우(田愚) 등 명유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수많은 애국지사가 자결했을 때, 거주하고 있던 영주에서도 많은 항일 지사들이 자결하였다. 의병장으로 사망한 장복규(張復圭)와 금달연(琴達淵)·서재승(徐在承)이 있으며, 경술국치에 자결 사망한 김성진(金聲鎭)이 영주 출신이다. 광복회원으로 장승원을 처단한 일로 붙잡혀서 1918년 사망한 임봉주(林鳳柱)도 영주 출신이다. 이러한 항일 지사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이에 『기려수필』 발문에 “자신이 용렬하여 순절을 못하고 의병을 하고자 했으나 지략이 없고,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고자 하였으나 자산이 없어 못했다”고 술회하였다. 따라서 1910년 전까지 항일 행적은 볼 수 없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고 해방될 때까지 30여 년간 괴나리봇짐을 지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항일지사의 행적을 조사 수집하였다. 명말(明末)의 기려도사(騎驢道士)를 본받아 애국지사의 행적을 조사하여 이를 『기려수필』이라 하였다. 『기려수필』의 발문에 의하면, 기려도사에 대한 고사를 알게 된 것은 탄당(坦堂) 김영주(金永冑)로부터였다. 김영주는 1895년 호서지방에서 영주지방으로 이거한 기호학파 계열의 유학자로 이승희(李承熙)와 교유한 기록도 보인다. 김영주는 전우가 유인석(柳麟錫)의 의병 동참 권유를 물리친 것을 들어 ‘불충불의의 무리’라고 비판할 정도로 의기가 강했던 인물이다. 김영주의 말을 명심하고 있다가 1910년 국치를 당하자 기려도사의 행위를 본받아 전국을 다니면서 순절자를 비롯한 애국지사의 행적을 수집하고자 한 것이다. 저술에 전념했는데 집을 나서면 어떤 때는 봄에 떠나 가을에 오기도 하고, 동복을 입고 떠나서 여름에 돌아오기도 하였다. 봄에 솜옷을 입고 떠나면 3년 만에 여름 삼베옷을 입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거지가 되어 온 적도 있으며, 가끔 과객들이 그의 집에 묵기도 하였다. 귀가해서는 거의 집에서 원고 정리를 할 뿐 외부와 접촉을 하지 않았다. 원고를 한지에 직접 붓으로 썼는데, 간혹 질이 좋은 한지가 생산되면 수십 권씩 구입하여 말리고 밟고 해서 원고지를 만들었다. 『기려수필』을 작성하고 곽종석과 간재 전우에게도 보내었다. 『기려수필』은 1930년대 초반에 초고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작성한 원고는 땅 속에 파묻어 보관하였다. 해방 후에도 해외에서 활약한 이들의 행적을 조사, 기술하였다. 「윤봉길」전에서 윤봉길을 비롯한 3의사의 장례식 상황까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해방 후 직접 발문을 쓰고 간행을 위한 준비를 하던 중에 1946년 12월 16일 병사하였다. 『기려수필』 외에도 『조선왕조사』와 『고려사』, 『중국사』 등을 집필하였다. 이 책들 역시 기전체 사서보다는 열전의 형태를 취했다. 『기려수필』은 그가 죽은 지 8년 후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기려수필』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강화에서 순절한 이시원(李是遠)의 행적부터 시작한다. 1882년 척사운동을 전개한 일로 붙잡혀 죽은 백낙관(白樂寬)과 홍재학(洪在鶴),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순사한 이경직(李耕稙)을 싣고 있다. 의병장에 대한 기록이 많은데, 1896년 항일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유인석(柳麟錫)·김복한(金福漢)·이설(李偰)·안병찬(安炳瓚)과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이후에 일어난 민긍호(閔肯鎬)·이강년(李康埏)·이인영(李麟榮)·전수용(全垂鏞) 등의 의병활동이 포함되어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순국한 민영환(閔泳煥)·조병세(趙秉世)·송병선(宋秉璿) 등과 친일적인 미국인 스티븐스를 암살한 장인환(張仁煥)과 전명운(田明雲), 1906년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에 파견된 이상설(李相卨)과 이준(李儁),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安重根), 매국노 이완용을 저격한 이재명(李在明),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순절한 홍범식(洪範植)·황현(黃玹)·김석진(金奭鎭) 등도 실려 있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승만(李承晩)·노백린(盧伯麟)·이시영(李始榮)·여운형(呂運亨) 등과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처단하기 위하여 서울역에서 폭탄을 던진 강우규(姜宇奎), 1921년 친일파 민원식을 암살한 양근환(梁槿煥), 조선총독부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金益相)과 김상옥(金相玉), 독립군의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 일왕을 처단하려고 한 박열(朴烈)·김지섭(金祉燮), 1932년 일왕에게 투탄한 이봉창(李奉昌)과 상해의 거의(擧義) 윤봉길(尹奉吉) 등 230여 명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에는 ‘효열’편이 있다. 『기려수필』은 1차 사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범례에서 “행장을 비롯하여 전(傳), 일록, 연보 등 인물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구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전국을 다니면서 애국지사에 대한 정보를 문집과, 행장과 전, 일록, 일기류, 묘지명 또는 당시 간행된 신문을 통해서 입수하였다. 독립운동가 중에서 순국지사에 대한 행적을 주로 조사, 기술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중에서도 특히 의병과 1910년 경술국치에 자결 순국한 인사들에 대한 많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하여도 상세히 기술하였다. 김마리아(金瑪利亞)와 안경신(安敬信)·양애심(梁愛心)이 대표적인 여성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망라하여 사실을 밝혀주었으며,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과 공산당의 활동에 관해서도 서술하였다. 『기려수필』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었으며, 이에 근거하여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이들이 많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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