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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즙

白鳳楫白奉楫

1895. 3. 16 ~ 1945.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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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봉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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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광제청년단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5년 3월 16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광평면(廣坪面) 하광리(下廣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이주하였다. 콴뎬현(寬甸縣) 안자구(安子溝)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1919년 6월 오동진(吳東振)의 지휘하에 광제청년단(廣濟靑年團)을 설립하였다. 광제청년단에는 의주군 출신 청년들이 많이 가입하였으며, 무장을 갖추기 위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20년 초 서간도 지역의 독립군 단체들이 통합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대원이 되었다. 1921년 6월 윤학승(尹學昇)을 비롯한 광복군총영 대원 5명이 국내로 진입해 평남지방을 무대로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인 다음 귀대하는 길에 광평면 하광리 집에서 머물렀다. 당시 집은 광복군총영의 국내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때 밀정 윤용섭(尹鏞燮)이 밀고하여 출동한 일제 경찰과 접전을 펼쳤다. 격전 끝에 독립군들은 압록강을 넘어 귀대했으나, 일제 경찰은 하광리에 있던 집을 불태워버렸다. 1926년 창춘(長春)에서 광제청년단 이래 함께 행동한 윤학승·윤학소(尹學昭) 형제와 활동하던 중, 1926년 9월 13일 윤학승 형제와 함께 신의주경찰대에 붙잡혔다. 약 2년 반 동안 미결수로 있으며 갖은 고문을 당해, 윤학소는 1927년 11월 옥사하였다. 1929년 3월 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2년 본형 산입)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고문으로 인한 병고에 시달리다가, 1945년 1월 1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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