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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哀律

方哀

미상 ~ 19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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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方哀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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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역, 성장 과정,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이명으로 방동율(方東律)·방동가(方東佳)를 사용하였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이하 국민회) 지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일제에 붙잡혀 희생되었다.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와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연달아 패한 일제는 독립군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출병시켜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무고한 간도지역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 한다. 당시 함경북도 나남(羅南)에 본부가 있던 일본 육군 제19사단의 예하부대 중 하나로 포병 제25연대(聯隊)가 있었다. 이들도 당시 국경을 넘어 만주와 간도 등지로 출동했던 부대였다. 당시 북간도의 옌지현(延吉縣)에 위치해있던 국민회는 기독교 장로회가 주도해 1919년 3월 조직되어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안무(安武)의 국민회군(國民會軍) 등의 군사조직을 거느린 단체였다. 구춘선(具春先)이 주도하여 창설된 국민회는 1919년 2월 옌지현에 본부가 있던 조선독립운동의사회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1920년 만주 지린성(吉林省) 옌지현 국자가(局子街)에서 국민회 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혔다. 조사 도중 탈출하여 운태(雲太)지역으로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1920년 11월 26일 일본 야포병(野砲兵) 제25연대에게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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