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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묵

金寬默

1894. 5. 26 ~ 1967.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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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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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선산(善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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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거창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5월 26일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 고아면(高牙面) 원호동(元湖洞)에서 태어났다. 김태동(金太東)의 아들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직부(直夫), 호는 경재(敬齋)이다. 15세 때 경남 거창군으로 이주하여 가서면(加西面, 현재는 가조면) 석강리(石岡里)에 거주하였다. 1910년 국권을 침탈당하자 17세의 나이로 조선 총독이 해인사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격을 시도하였다가 삼엄한 경비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9년 3월 20일 가조면 장기리(場基里)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일으킨 김병직(金秉直)·어명준(魚命俊) 등이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헌병대에 압송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소식에 다음 날인 3월 21일 김호(金濩)·신병희(愼炳禧)·어명우(魚命佑)·어명철(魚命喆)·오문현(吳文鉉)·이병홍(李秉洪) 등 6인이 3월 22일 거창면 장날을 맞아 만세 시위를 모의하고 가조면과 가북면(加北面) 일대에 이 소식을 전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사전에 누설되어 거사 당일인 3월 22일 아침 주도 세력이 헌병대에 체포되고 말았다. 주도자들이 모두 체포되었지만 집결해 있던 시위대는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가조면과 가북면의 3,000여 명의 면민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체포당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날 오후 2시 30분경, 몽둥이를 가지고 장기리 만도정(晩嶋亭) 앞에서 독립 만세라고 쓴 큰 기를 세운 후, 거창읍으로 시위 행진하였다. 시위 대열이 사포현(沙浦峴)에 이르렀을 때 거창 헌병대와 용산(龍山) 헌병분견대가 합세하여 진로를 차단하고 공포를 발사하며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력 진압에 굴하지 않고 시위대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헌병들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4명이 순국하였으며, 여러 부상자가 발생하여 시위 대열은 해산하였다. 시위 현장에서 몸을 피하였지만 이후 체포당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해 5월 31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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