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찬
孫基瓚1886. 12. 14 ~ 1979. 6.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산남의진
- · 대한광복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12월 14일 경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현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磻溪里)에서 아버지 손경헌(孫慶憲)과 어머니 장청대(張淸大)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906년 4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장 정용기(鄭鏞基)가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전사한 뒤, 1907년 9월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총대장에 취임하자 칠곡 출신의 장준호(張俊灝)·장성우(張性愚)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07년 가을 정환직이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북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준호·장성우 등과 함께 인동(仁同, 현 구미시 인동동) 및 칠곡(漆谷) 지역으로 파견되어 군사와 무기를 모집하였으며, 나아가 인동 및 칠곡 지역에서 탄약 제조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1913년 채기중(蔡基中) 등이 조직한 풍기 광복단(光復團)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7월 풍기(豐基, 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일대)의 광복단과 대구(大邱)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할 때 적극 참여하였다. 1917년 11월 10일 친일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이른바 ‘장승원암살사건(張承遠暗殺事件)’을 후원하였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이 채기중·강순필(姜順弼)·유창순(庾昌淳) 등을 시켜 장승원의 암살을 결행할 때 보관하고 있던 권총 2자루를 제공하였다. 이 권총은 1916년 6월 30일 마을 주막에서 채기중으로부터 받아서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당시 채기중은 “이 권총 2자루를 확실하게 보관하여 오는 11월 7일 약목시장으로 가지고 오라. 그 때는 짚 속에 넣어 짚 장수처럼 하고 가지고 오라”는 당부를 하고 넘겨준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 해 11월 7일 채기중·유창순·강순필·임봉주(林鳳柱) 등에게 권총이 들어있는 가방을 약목(若木)시장에서 넘겨주었다. 1918년 1월 24일 충남 아산군(牙山郡, 현 아산시) 도고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 암살사건으로 같은 해 1월 27일 성환(成歡, 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서 장두환(張斗煥), 예산(禮山)에서 김경태(金敬泰)·임봉주 등이 체포될 때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공갈살인죄·방화죄·강도죄·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기소되어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죄·공갈죄·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통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919년 9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중 부분 취소로 살인 혐의는 무죄를 받았으나 이른바 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태(苔)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