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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보

白淳甫

1922. 11. 20 ~ 1988.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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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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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운산(雲山)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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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922년 11월 20일 평안북도(平安北道) 운산군(雲山郡) 동신면(東新面) 마장리(馬場里)에서 태어났다. 1943년 평양의학전문학교(平壤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곧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소재 대학 재학 중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였다.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의무주임·군의관·구호실장을 거쳐 구호대장으로 활동하였다. 태평양전쟁의 전세는 1944년 전후로 일본에 불리해졌다. 중국 소재 대학교의 법학원 상학계 2학년 재학 중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병영에서 탈출하였다. 이어 1944년 4월경 광복군 대원과 만났다. 1945년 초 톈진(天津)지구에 파견 공작 중이던 윤용호(尹龍虎)의 도움을 받아 톈진과 베이핑(北平)의 거점에서 포섭한 김유환(金裕煥) 등 10여 명과 함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 대리 김학규(金學奎)가 지대장으로 있던 광복군 제3지대의 당시 명칭은 징모 제6분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가 광복군의 병력 증대를 돕는 초모활동을 위해 1942년 2월에 이르기까지 신설한 5개의 징모분처 중 하나였다. 징모 제6분처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거점을 두고, 화이양(淮陽)·칭다오(靑島)·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 등지에 공작원을 파견하여 초모활동과 대일공작에 주력하였다. 이를 통해 초모된 부대원은 중국과 일본 현지에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학도지원병으로 징집된 후 탈출한 한인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징모 제6분처는 1945년 4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고 그 해 6월 성립식을 가졌다. 이러한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한 후 푸양에 있는 제3지대 본부 의무실에서 의무주임·군의관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6월에는 구호실장을 거쳐 구호대장을 맡았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중국 전역의 일본군 점령 지구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사회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에 광복군 제3지대 참모 진영에서는 일부 과격한 중국인들의 보복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제3한인 교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 군사 특파단을 파견하였다. 강제 수감되어 있는 동지들의 신병 확보, 한인 교포의 생명과 재산 보호, 중국인 주도의 일본군 무장해제 공작 협조, 한인의 조속하고 안전한 귀국 알선, 연합군 및 중국군과의 유기적인 친선 도모 등을 임무로 하는 베이핑(北平) 지구 특파단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단장 김광언(金光彦), 부단장 김지옥(金址玉) 등의 지휘 아래 특파단 단원으로서 해당 지구 한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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