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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응규

孫應奎

185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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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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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송화(松禾)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송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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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황해도 송화군 송화읍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2)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상리면(上里面) 철관리(喆館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69세로 기록되어 있어 185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12일 황해도 송화군 송화읍(松和邑)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중심으로 평양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천도교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자 천도교 중앙총부와 지방 천도교구에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지역 중심의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천도교구는 신천군(信川郡)과 안악군(安岳郡)의 천도교구로부터 만세운동 발발과 시위의 전국적 확산 계획을 전달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화군 만세운동은 천도교가 주도하여 일어나게 되었다. 3월 2일 저녁 송화군 천도교구장 손두순(孫斗淳)은 신천군(信川郡)에서 온 김재선(金在先)과 우동익(禹東翼)으로부터 3월 1일 민족대표자 33인이 서울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사실과 독립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 시도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음날인 3월 3일, 안악군(安岳郡) 대교구장 김승주(金承周)는 손두순을 불러 역시 3월 1일에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와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 계획을 전해 주었다. 천도교를 중심으로 송화군의 만세운동이 준비가 되던 중 3월 10일 송화헌병분대가 우동익을 붙잡아갔다. 3월 11일에는 달천(達泉)헌병분대가 김재선(金在先)을 붙잡아 송화헌병분대로 인계하였다. 만세운동의 소식과 전국적인 확산 계획을 송화군 천도교구에 알린 신천군의 김재선과 우동익이 잇달아 송화헌병분대에 체포됨으로써, 송화군 내에서는 삼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3월 12일 송화군에서는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시위대는 송화면을 비롯해서 상리면(上里面)과 진풍면(眞風面)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만국강화회의에서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서 한국도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송화군 내 사람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장병국(張炳國)·조종목(趙鍾穆)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송화헌병분대로 나아가자 200여 명의 시위대가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자 헌병대는 해산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서 총격을 가했고, 시위대 일부가 중상을 입었다. 그 날 시위 현장에서 송화헌병분대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919년 5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징역 2년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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