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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국

孫銀國

187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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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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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이천(伊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이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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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 탑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용포면(龍浦面) 창전리(倉田里) 출신이다. 천도교인(天道敎人)으로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2세로,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伊川面) 탑리(塔里)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강원도 이천군 탑리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 사는 천도교인 정용규(鄭龍奎)·김연옥(金淵玉)과 함께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천군에서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그 다음날부터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기 시작하였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이 전개되는 등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천면 탑리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 4월 4일과 5일에도 영양면(榮壤面, 현재 낙양면(樂壤面)) 지석리(支石里)의 천도교인 김병하(金炳河)·김응제(金應濟)·김이순(金利淳) 등이 주축이 되어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틀 동안 전개된 만세운동에서 시위 군중들은 지하리(支下里)에 있는 헌병분견소를 공격하여 헌병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하게 시위를 펼쳤고, 이 과정에서 헌병이 쏜 총탄에 시위군중 3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전날 지석리 만세운동으로 이천군의 만세운동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거사 당일인 4월 6일 정용규·김연옥과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날은 창전리에서 해마다 열리는 봄 고사(춘계기제(春季祈祭))가 있던 날로 고사를 맞아 창전리 주민 100여 명이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고사가 끝난 후 주도자들과 함께 참석한 주민들에게 “지금 읍내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유 하였다. 이들의 만세운동 권유에 창전리 주민들도 호응을 하면서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를 꺼내 선두에 섰다. 시위대를 이끌고 창전리부터 이천면 비석리(碑石里)를 지나서 탑리 장터까지 만세시위를 펼쳤다. 저녁 10시경 탑리 시장에 이른 시위대는 장터를 돌며 “대한민국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한편, 오후 4시경 탑리 장터에서는 이천면 남좌리(南佐里)의 천도교인 박재곤(朴在坤)·이원모(李元模) 등이 장꾼과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펼쳤다. 그러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는 현장에 경찰을 급파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에 나선 주도자들을 체포하고 태극기 3장도 몰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재차 상고하면서 “자신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근거한 것으로 범죄가 되지 않은 데에도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부당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위법(違法)”이라며 항변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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