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득룡
孫得龍1893. 7. 19 ~ 1954. 9.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합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7월 19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대양면(大陽面) 백암리(伯岩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손용이(孫龍伊)가 있다. 1919년 3월 합천군 대양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0일 대양면 만세 시위는 전날인 3월 19일 합천읍내에서 전개된 시위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 졌다. 합천읍내 시위의 주도층이 대부분 대양면 출신들이었고, 참여층도 면민들이 대다수였다. 이날 시위는 일제의 진압으로 해산되었는데, 이에 분노한 면민들이 이튿날 다시 궐기하여 합천 읍내로 나간 것이 대양면 만세 시위였다. 3월 19일 합천읍내 시위는 대양면 출신 유림 강홍렬(姜弘烈)이 고종 인산(因山)을 계기로 상경하여 서울의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져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양면 대목리(大目里)의 심재기(沈載祺)·심진환(沈瑨煥) 등과 함께 대목리 이계(伊溪)의 수암정(修巖亭)에서 거사 계획을 논의하였다. 3월 19일은 합천 읍내 장날이었다. 대양면민들을 포함하여 약 500명 정도의 군중을 선도하여 시장을 누비며 만세 시위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일제 경찰이 시위 군중을 폭압적으로 진압, 해산하고 심재기 등 16명을 검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체포되지 않았으나 일제 경찰의 진압과 검거에 분노하여 대양면민들과 함께 3월 20일 대목리 마정(馬亭) 부락에 모여 재차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다. 결의 과정에서 심맹권(沈孟權)이 선두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시위대를 이끌 결사대 조직을 제안하자, 흔쾌히 수락하였다. 심맹권 을 비롯하여 12명과 함께 결사대를 구성하기로 하고 명부를 만들어 이름을 적고 무인을 눌러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를 부르며 합천 읍내에 도착하자, 동조하는 군중들이 합세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불어났다. 시위대를 지휘하여 읍내 거리를 누비며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고, 오후 7시경에는 합천경찰서로 갔다. 김영기·추용만 등 결사대원들과 함께 군중을 지휘하여 경찰서 건물을 포위하고 만세를 부르며 전날 만세시위로 검거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합천경찰서장은 해산을 명령하면서 소방부와 함께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하였다. 일제 경찰들이 공포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하자, 격분하여 군중들과 함께 경찰서 안으로 돌진하였다.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일제 경찰이 총포를 발사하였고, 현장에서 김영기 등 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붙잡혔으며, 경찰의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4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