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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화

白受和

1857. 7. 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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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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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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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수안군 수안면(3.3)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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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2)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수촌리(秀村里) 출신이다. 1920년 판결문에 64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57년생으로 추정되며, 생일은 7월 7일이다. 1919년 3월 3일 수안군 수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황해도 동부에 위치한 수안군의 만세운동은 지역 천도교인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황해도 곡산(谷山) 출신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은 1919년 2월 28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아 천도교 수안교구장 안봉하(安鳳河)·김영만(金永萬)·나찬홍(羅燦洪) 등에게 전달하였다. 안봉하 등 수안교구 인사들은 논의하여 3월 3일 수안면 읍내에서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고, 각 지역의 동지들에게 거사 계획을 알렸다. 이때 안봉하의 연락을 받고 참여하였고, 지역의 천도교인들에게 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을 전달하는 연락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안헌병분대가 계획을 눈치채고, 3월 2일 수안면 석교리(石橋里) 수안교구를 직접 수색하였다. 수안교구 내 돗자리 밑에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가 발각되었고, 안봉하·김영만·나찬홍 등 주요 인사 11명이 붙잡혔다. 주도 인물 중에 다행히 체포를 피한 홍석정·한청일(韓淸一)·이영철(李永喆) 등과 함께 3월 3일 오전 6시 수안군의 여러 지역에서 모인 천도교인 약 150명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수안헌병분대에 가서 퇴거를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독립만세 함성은 더욱 커졌고, 이동욱(李東郁) 등과 함께 선두에서 대열을 이끌며 행진하였다. 오전 11시 수안헌병분대 앞에 재집결한 천도교인 130~150명과 함께 재차 헌병분대의 퇴거를 요구하며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였다. 일제 헌병이 군중에게 발포하여 사상자가 나오자 물러났다. 그러나 오후 1시 천도교인들은 다시 모여 일제 헌병의 만행에 항의하며 억류된 주민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헌병분대는 또다시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여 이날 13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일제 헌병의 무자비한 총탄은 피했으나, 체포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긴 시간 동안 예심을 거친 후, 1920년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이 관할 재판소로 지정되었다. 경성지방법원의 법리 검토를 거쳐 같은 해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저택 침입죄 등으로 징역 1년 3월(미결구류일수 중 4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최종 판결을 받을 때까지 약 1년 8개월간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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