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연
白性淵188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운산군 북진면(4.5)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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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평안북도 운산군(雲山郡) 성면(城面) 연봉하동(延峰下洞)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35세로 기록된 것을 보아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5일 전개된 운산군 북진면(北鎭面) 진동시장(鎭洞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나라가 사라진 것을 슬퍼하고 있다가, 1919년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는 상황을 내심 환영하였다. 마침 운산군에서도 3월 5일 이후 지속적으로 밤마다 산에서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3월 12일 운산군 천도교도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계획이 누출, 발각되어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는 등 운산군에서의 본격적인 만세운동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4월 5일에 운산군 운산면(雲山面) 읍내 일대와 북진면 일대에서 동시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운산 읍내에서는 11시부터 약 200여 명이 태극기와 ‘신대한제국독립만세(新大韓帝國獨立萬歲)’라고 쓴 깃발을 휘날리며 만세를 불렀고, 북진면 진동시장 일대에서는 천도교도와 광산 노동자 300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이때 진동시장 일대의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북진면의 광산 노동자들이 만세시위를 벌일 경우 사태가 커질 것을 우려한 일제 헌병과 경찰은 미리 병력을 증원하는 등 만세운동에 대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시위가 일어나자 준비하고 있던 일제 헌병과 경찰이 즉각적인 탄압에 나섰고, 이들의 폭력적인 진압에 의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군중 가운데 수 명이 부상을 당하고 35명이 붙잡히게 되었다. 이때 함께 일제 헌병에 의해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제1심 재판은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열렸는데,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횡령죄,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다시 불복하고 “독립만세를 불러 인도 정의를 표창(表彰)하고 생존의 자유를 얻으려는 것인데 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라며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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