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근
白鳳根1897. 4. 10 ~ 1936. 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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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2) 1897년 4월 1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남외리(南外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兵營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동) 일대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에서는 1919년 4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4일 병영청년회 간부인 양석룡(楊錫龍)과 이현우(李鉉禹) 등이 주축이 되어 병영리 사립 일신학교(日新學校, 현 병영초등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남외리·서리(西里, 현 서동)·동리(東里, 현 동동)·산전리(山田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 등을 돌면서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경찰과 일본군 수비대의 무력 행사로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의 만세운동이 중도에 좌절된 직후에 이문조(李文祚)·이종필(李鍾弼)·이종근(李鍾根)으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고 다음 거사를 서둘러 준비하였다. 병영청년회 간부들인 윤학이(尹學伊)·김송근(金松根) 등과 함께 시위 계획을 세우고 다음날 4월 5일 이른 아침부터 일신학교 부근으로 갔다. 전날의 거사가 알려져 군중들이 일찍부터 일신학교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오후 3시, 1천여 명에 이르는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시작하였고 인근 지역을 행진하다가 경찰주재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전날 검거된 주도 인물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다시 진압을 위해 경찰과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였으나 이번에는 시위대도 물러서지 않았다. 시위대와 일제 군경사이에 공방전이 전개되었고, 결국 시위대를 향한 야만적인 발포가 이루어져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시위 군중들과 함께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지만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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